자식에게 남길 것과 남기지 말아야 할 것 — 미리 정리하는 상속과 유언
자식에게 남길 것과 남기지 말아야 할 것 — 미리 정리하는 상속과 유언
큰언니가 돌아가신 뒤, 저희 사촌들 사이에 벌어진 일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유언장이 없었습니다. 평소 "이 집은 첫째한테, 저건 막내한테" 하시던 말씀은 있었지만, 종이 한 장 남기신 게 없었습니다. 결국 법이 정한 비율대로 나누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엄마가 나한테 더 잘해주셨다", "네가 더 많이 받았다"는 말들이 오가며 삼 남매가 명절에도 안 보는 사이가 됐습니다.
가장 슬펐던 건, 돌아가신 언니가 그런 걸 바라셨을 리 없다는 겁니다. 평생 자식들 우애 좋게 살라고 하신 분이었거든요. 종이 한 장이 없었던 것뿐인데, 남은 가족의 관계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로, 무겁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재산을 남기는 것보다 중요한 건, 가족에게 갈등을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 재산 목록부터 정리하세요
의외로 상속 갈등의 상당수는 재산이 많아서가 아니라, 뭐가 있는지 가족이 몰라서 생깁니다. 자녀들이 부모님 사후에 통장, 보험, 부동산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이고, 이 과정에서 오해도 생깁니다.
재산 목록에 담을 것
- 부동산 (주소, 소유 형태)
- 예금·적금 계좌 (은행명만이라도)
- 보험 (보험사, 상품명, 수익자)
- 국민연금·퇴직연금 등 연금 자산
- 대출이나 빚 (있다면 반드시 포함 — 상속은 빚도 함께 상속됩니다)
- 중요 서류 보관 위치 (등기권리증, 통장, 도장 등)
거창한 서식이 필요 없습니다. 노트 한 권에 적어두고 가족 중 한 명(보통 배우자나 믿는 자녀)에게 위치를 알려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매년 한 번씩, 예를 들어 생일이나 새해에 업데이트하는 습관을 들이면 부담이 크지 않습니다.
둘. 유언장 - 말이 아니라 문서로 남기기
왜 말로는 부족한가
큰언니의 경우처럼, 말로 남긴 뜻은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가족들이 각자 다르게 기억하거나, 아예 못 들은 사람이 나오면서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법적으로 유효한 유언장 한 장이, 이 모든 갈등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대표적인 유언장 방식 두 가지
자필증서 유언: 비용이 들지 않고 언제든 작성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유언 내용 전체, 작성 연월일, 주소, 성명을 전부 본인이 손으로 쓰고 도장을 찍어야 법적으로 유효합니다. 컴퓨터로 작성하거나 날짜·주소 중 하나라도 빠지면 무효가 될 수 있어, 형식 요건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공정증서 유언: 공증인 앞에서 증인 2명과 함께 유언 내용을 말하고, 공증인이 이를 문서로 작성하는 방식입니다. 비용이 들지만(재산 규모에 따라 다름) 형식 오류로 무효가 될 위험이 거의 없고, 원본이 공증사무소에 보관되어 분실·위조 걱정도 없습니다.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면 공정증서 방식을 권합니다.
이 외에 녹음, 비밀증서, 구수증서 방식도 법에 정해져 있지만, 특수한 상황(위급한 경우 등)에 주로 쓰이므로 평소에는 위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유언장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유언장이 없으면 민법이 정한 법정상속분대로 나뉩니다. 배우자는 자녀 몫의 1.5배, 자녀들은 서로 동등하게 나누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문제는 이 비율이 고인의 실제 뜻과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정 자녀가 오래 부모를 부양했거나, 반대로 왕래가 거의 없었던 사정 같은 것은 법정상속분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고 싶다면 유언장으로 남기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셋. 사전연명의료의향서 - 마지막 순간의 결정을 미리
재산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자식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연명의료 결정입니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마지막 순간에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같은 치료를 계속할지 말지, 이 결정을 자식이 대신 내려야 하는 상황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내가 살릴 기회를 포기한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평생 남기도 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본인이 건강할 때 미리 이 결정을 문서로 남겨두는 제도입니다.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고,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등록된 기관(보건소, 병원, 종교단체 등 전국에 다수 있습니다)을 방문해 상담 후 작성하면 됩니다. 작성 후에도 언제든 본인이 직접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습니다.
이 문서 한 장이 있으면, 자식들은 그 순간 "부모님의 뜻이 이러하셨다"는 것을 알고 존중하면 됩니다. 어려운 결정의 무게를 자식에게 넘기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시리즈 전체가 말해온 "당당한 독립"의 마지막 조각입니다.
상속세, 걱정보다 확인이 먼저입니다
"우리도 상속세를 내야 하나"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2026년 현재(7월) 기준으로 배우자가 있는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생각보다 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일괄공제:5억원
- 배우자공제:배우자가 실제 상속받은 금액 기준으로 최소 5억원, 법정상속분 한도 내에서 최대 30억 원까지
- 여기에 순금융재산공제(최대 2억원). 10년 이상 동거한 무주택 자녀가 주택을 상속받는 경우의 동거주택상속공제(최대 6억 원) 등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이 공제들을 합쳐 상당한 금액까지는 상속세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부동산이 많거나 재산 규모가 큰 경우에는 세무사와 미리 상담해 절세 계획을 세워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한 가지 참고로, 현재 상속세 제도를 큰 폭으로 바꾸는 개정 논의(유산취득세 방식 전환 등)가 계속 있어 왔지만, 2026년 7월 현재까지 국회를 통과해 확정된 개편은 없는 상태입니다. 재산 규모가 커서 상속세 부담이 걱정되신다면, 이런 논의가 실제로 어떻게 결론 나는지 세무 전문가를 통해 최신 상황을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오늘 당장 할 일 한 가지
👉 노트 한 권을 꺼내, 우리 집에 무엇이 있는지(부동산, 통장, 보험) 제목만이라도 적어보세요. 10분이면 됩니다. 유언장은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할 수 있지만, 재산 목록은 오늘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노트의 존재만이라도 배우자나 믿는 자녀 한 명에게 알려두세요.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자필증서 유언, 어떤 실수로 무효가 되나요?
가장 흔한 실수는 컴퓨터로 작성하거나(반드시 자필이어야 합니다), 날짜를 "2026년 7월" 처럼 일자 없이 적거나, 주소를 빠뜨리거나, 도장(또는 서명)을 안 찍는 경우입니다. 형식 요건 중 하나라도 빠지면 법적 효력이 없어질 수 있으니, 작성 후 변호사나 법률구조공단의 무료 상담을 통해 형식을 확인받으시길 권합니다.
Q2. 빚이 재산보다 많으면 자식이 그 빚을 다 떠안게 되나요?
상속인은 상속 개시(사망)를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한정승인은 상속받은 재산 한도 내에서만 빚을 갚는 제도로, 재산보다 빚이 많은지 불확실할 때 특히 유용합니다. 이 기간을 놓치면 자동으로 단순승인(빚까지 전부 상속)으로 처리될 수 있으니, 부모님 재산 상황이 불투명하다면 이 3개월 기한을 꼭 기억해 두세요.
Q3. 유언장에 특정 자녀만 재산을 몰아줘도 되나요? 다른 자녀가 반발하면요?
법적으로 유언은 가능하지만, 다른 상속인에게는 유류분이라는 최소한의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특정 자녀에게 전 재산을 몰아주는 유언을 남기더라도, 다른 자녀는 자신의 법정상속분 중 일정 비율을 유류분으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갈등을 정말로 줄이고 싶다면, 유류분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유언을 작성하시거나,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이유를 함께 남겨두는 것(별도의 편지 등)도 도움이 됩니다.
Q4.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는데,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어떻게 하나요?
언제든지 본인이 직접 등록기관을 방문하거나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을 통해 변경 또는 철회할 수 있습니다. 한번 작성했다고 영구히 고정되는 것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고 지금 시점의 뜻을 남겨두시면 됩니다.
Q5. 상속과 증여, 미리 증여하는 게 세금 면에서 유리한가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생전에 미리 나누어 증여하면 증여세 공제(배우자, 자녀별로 일정 금액까지 비과세)를 여러 번에 걸쳐 활용할 수 있어 유리한 경우가 있지만, 사전증여 재산은 상속 시 다시 합산되는 규정(통상 상속 개시 전 10년 이내 증여분)도 있어 단순하지 않습니다. 재산 규모가 있으시다면 세무사와 함께 상속·증여를 종합적으로 설계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